대한민국 축구 전래 130년, 아시아를 호령하다!

한국의 축구 역사는 18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인천에 정박한 영국 국함 ‘플라잉 호스호’의 승무원들이 인천 지역 사람들에게 축구를 전해주었다는 게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빠른 편인데, 근대 축구를 가장 먼저 받아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0년대에 간도 지방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이 축구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일제 강점기인 1928년에 조선심판협회가 만들어졌고, 1933년에 조선축구협회가 창립되면서 본격적인 축구 역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일제는 1938년 모든 체육단체를 해산시켰고, 이 과정에서 조선축구협회도 강제 해산됐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조선축구협회가 다시 창립됐고, 1948년 9월 4일 현재의 명칭과 같은 대한축구협회로 개칭했다. 대한축구협회 개칭 3개월 전인 5월에는 FIFA에 정식으로 가입했다.
1954년 5월, 아시아축구연맹(AFC)에 가입했고, 같은 해에는 아시아 대표로 ‘1954 스위스 월드컵’에 참가했다. 유일한 아시아 팀이었던 한국은 헝가리와 터키에 각각 9 : 0, 7 : 0으로 패하며 탈락했다.
세계 무대에서는 아쉬움을 삼켰지만 아시아 지역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1954 마닐라 아시안게임’ ‘1958 도쿄 아시안게임’ ‘1962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후로도 아시아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월드컵 도전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경쟁했던 호주와 이스라엘, 이란에 밀려 고전한 것이다.

한국은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예선에서는 일본을 잡고 최종 예선에 진출했지만 본선으로 가는 데 실패했다. 8 경기에서 3승 4무 1패의 성적으로 2위를 차지했는데, 당시 1위는 6승 2무를 차지한 이란이었다. 한국은 차범근이라는 걸출한 스타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1982 스페인 월드컵’ 예선에서는 최종 예선에도 오르지 못했다. 쿠웨이트에 패하며 조 2위로 탈락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32년 만에 본선에 올랐다. 1라운드를 무난하게 통과한 뒤 2라운드에서 인도네시아와 2경기를 치러 모두 승리했고, 3라운드에서는 숙적 일본을 만났다.
한국은 일본 도쿄에서 벌어진 1차전에서 2 : 1로 이겼고, 서울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도 허정무의 결승골로 1 : 0으로 승리했다. 이라크와 함께 본선으로 진출했지만, 역시 세계의 벽은 높았다.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불가리아를 조별 리그에서만난 한국은 1차전인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호르헤 발다노에게 2골을내주며 1 : 3으로 졌다. 박창선이 월드컵 역사상 첫 골을 터뜨린 데 만족해야 했다.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 1 : 1로 비겼고,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는 2 : 3으로 졌다. 한국은 비록 1무 2패로 탈락했지만,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회택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한국 대표팀은 9‘910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에도 올랐다. 그러나 멕시코 월드컵보다 좋지 못한 성적을 거뒀다. 벨기에, 스페인, 우루과이에 모두 패한 것이다.
득점도 스페인전에서 나온 황보관의 프리킥 골이 전부였다. ‘1994 미국 월드컵’에는 김호 감독 체제의 대표팀이 도전했다. 당시 대표팀에는 홍명보, 황선홍, 서정원 같은 젊은 선수들이 대거 선발됐다. 한국은 스페인과의차 1전에서 2골을 내준 뒤 2 : 2 무승부를 만들며 기대감을 높였다. 볼리비아와의차 2전에서는 0 : 0으로 비겼고, 독일과의 3차전에서는 전반에 3골을 내주고 후반에 2골을 따라붙었다. 한국은 첫 16강 진출이라는 기대는 이루지 못했지만, 승점 2점을 땄다.
‘1998 프랑스 월드컵’을 맞아 대표팀의 지휘봉은 차범근 감독이 잡았다. 차범근은 예선에서 단 1 패만 기록하면서 주위의 기대를 모았다. 대회 직전에 주전 스트라이커 황선홍이 부상을 당하는 악재가 있었는데, 이 일은 본선에서 대표팀이 맞볼 악몽 같은 경기의 전조였는지도 모른다.
한국은 멕시코와의 1차전에서 사상 최초로 선제골을 기록했으나 이후 하석주가 퇴장당한 틈을 막지 못하고 1 : 3으로 졌으며,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 0 : 5로 패하며 충격을 줬다. 대한축구협회는 대회 도중에 차범근을 경질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감독 없이 치른 벨기에와의 3차전에서는 1 : 1로 비겼다.
2002년 한국은 일본과 함께 ‘2 002 한일 월드컵’을 개최했다. 감독으로는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을 무너뜨렸던 거스 히딩크를 초빙했다. 시작은 좋지 않았다.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 0: 5로 패했고, 월드컵을 앞두고 벌인 유럽 평가전에서는 체코에 0 : 5로 졌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을 50일 앞둔 시점에 “오늘부터 1%씩 발전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믿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은 월드컵 첫 경기인 폴란드전에서 사상 첫 본선 승리(2 : 0)를 거뒀고, 미국과 1 : 1로 비겼다. 3차전에서는 우 승 후보인 포르투갈을 박지성의 골로 1 : 0으로 물리치며 16강으로 갔다.
16강전에서는 이탈리아에 먼저 골을 내줬지만, 설기현의 동점골과 안정환의 골든골로 승리했으며 8강전에서는 스페인에 승부차기로 이겼다. 전 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간 한국 대표팀의 기적은 여기까지였다. 4강전에서는 독일에 0 : 1로 패했고 3,4위전에서는 터키에 2 : 3으로 졌다. 4강전에서 패배했을 때는 모두가 아쉬움을 삼켰지만, 한국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성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은 ‘2006 독일 월드컵’에서 1승 1무 1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박지성의 활약 속에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뤘다. 16강전에서는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골을 허용하며 1: 2로 패했다. 한국은 ‘2014 브라질 월드컵’을 1년 앞두고 홍명보 감독을 선임했다.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 홍 감독을 신임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 선택은 홍명보와 대한축구협회 모두에게 패착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와의 첫 경기에서 비겼고, 알제리와의차 2전에서 2 : 4로 무너졌다. 한국은 벨기에와의 최종전에서도 0 : 1로 패했다. 대회가 끝나고 온갖 루머와 잡음이 흘러나왔고, 홍명보는 결국 불명예스럽게 사퇴했다.
이후 독일 출신인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어수선한 대표팀의 분위기를 빠르게 수습했고,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슈틸리케 감독은 최종예선까지만 팀을 이끌었고, 신태용 감독이 러시아 월드컵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신 감독은 스웨덴과 멕시코에 연달아 패했으나 조별리그 3차전에서 전 대회 우승팀 독일을 2-0으로 이겼다.
대회가 끝난 뒤에는 포르투갈 출신 파울루 벤투 감독이 부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