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시작 단군신화

1. 개요
단군신화에 나오는 고조선의 최초 군주 또는 토착 고조선의 군주들이 세습했던 군주의 호칭으로 추정되는 말이다.
이 항목은 초대 단군만을 설명한다.
2. 상세
정확한 명칭은 단군왕검(檀君王儉)이지만 일반적으로 단군이라고 지칭된다.
친근하게 단군 할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하며 한국의 역사를 열었다고 알려지는 신화 속 인물이다. 즉 한민족의 시조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이른 바 단군신화의 해석은 다양하지만 적어도 근대 이래로 표면적인 이야기 자체보다는 현실적인 관점으로 문장들을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군은 이름이며 왕명은 왕검인데 김영하 교수에 의하면 단군은 몽골 신화의 탱그리와 같은 의미이며 왕검은 일본에서 군주를 뜻하는 오오키미와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대종교 등에서는 여전히 단군을 왕명으로 보고 1대 단군 2대 단군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신채호를 필두로 강대한 고조선의 신앙적, 정치적인 집권군주로서 단군이 조명되고, 이에 따라 단군 신앙도 나철의 대종교로 조직화되어 민족주의적 일획을 담당했다.
이 대종교의 역사적 관점은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으나 현대 국가 성립 초기에도 반영되어 개천절로 이어졌으나, 근대 이전까지 개천절에 대해 특별한 역사적인 근거 문헌이 있는 것은 아니고 민간 신앙을 공식화한 것에 가깝다.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이것이 한반도 북부에서 만주 일대가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접어들던 과도기의 역사적 믿음이 반영된 산물로 보기도 했다.
곰과 호랑이를 숭배하던 토테미즘의 신석기 사회에, 천손 신앙을 가진 청동기 집단이 유입되어 그들이 호랑이 집단과 곰 집단을 흡수한 후, 훗날 고조선으로 발전하는 단군 집단을 이루었다는 정도로 해석했던 것이다.
다만 단군왕검이 최초로 문헌상에 등장하는 것은 13세기 말에 등장한 《삼국유사》이고,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인용한 문헌 《고기》(古記)는 현전하지 않는다. 1145년에 나온 《삼국사기》에 평양의 원래 주인으로 '선인왕검(仙人王儉)'이 언급되는 것을 보아 적어도 고려 중기에는 신화의 구성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만 '선인왕검'이 '단군'으로 강력하게 추정되기는 하나 명확히 단군이라 명시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7세기 신라의 통일 이후 단군 신앙의 중심지였을 평양은 신라와 발해의 중간지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평양성이 잡초가 무성한 폐허가 되는 등 어떤 상황이었는지조차 파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전 시대의 전승이 계속해서 이어졌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후기 기록을 중국 사서에서 빌려써서 장수왕 등의 몇몇 군주들은 내정 기록보다 조공 기록이 더 많을 정도인지라 풍습에 대한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않을 정도라 이해가 안가는것도 아니지만. "단군"이라는 이름을 비롯하여, 신화의 전체 모습이 확인되는 것은 《삼국유사》가 쓰인 시기를 비롯한 13~14세기 이후의 일이다.
이후 조선 초기에는 황해도 구월산에 삼성사(三聖祠)가 있어 환인 · 환웅 · 단군을 모시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시기 단군은 민간 신앙의 중요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최근의 역사학계에서는 단군 신화를 대동강 유역에서 한정적으로 신봉되던 지방신으로 보는 견해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실제 청동기 시대 역사를 반영한 사실로 보는 데 소극적이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 대종교의 아류로 만들어진 태백교(太白敎)·단단학회(檀檀學會)와 같은 종교 집단의 유사역사학은 오늘날까지도 암암리에 사회 저변에 자리하고 있어서 문제가 된다.
유사역사학 추종자들은 '단군신화'라는 용어를 말하면 친일 식민사학자라고 몰아가기 일쑤지만, 민영휘, 영선군, 박영효, 이재극 등과 친일 유림단체들도 단군을 숭배하고 단군릉수축운동을 진행했다.
영상 애초에 '단군신화'는 주몽신화, 박혁거세신화, 수로왕신화같이 한국사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역사속에서도 흔하게 나타나는 건국신화로서 단어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이유가 하등 없다.
그저 고조선의 건국신화 정도로 이해하면 되는 일이니 용어 사용에 대한 문제제기는 환빠들만의 주장으로 간주하고 무시하면 된다.
애초에 내용부터 현실성이 떨어지는 전설이라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 하더라도 신화라고 부르는게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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